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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의 카드 3: 수날의 마지막 순간Sunaal’s Last Moments.

안녕하십니까? DKSA 번역팀 담당자 Shane Kim입니다.


삼라만상의 카드(Deck of Many Things)는 본래 저희들끼리 진행하던 게임에서 발생한 (주로 번역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코너 담당자가 다른 업무에 동원되다보니 아이디어 고갈로 잠시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번 기회에, “D&D의 실제 게임 진행”을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래 짧은 이야기는, 2019년 2월 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의 D&D 이야기로 올라온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 내 캐릭터가 죽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봐야겠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이야기는 많은 플레이어와 마스터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물론, 아래 이야기의 묘사 부분은 창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도 충분히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만, 말씀드렸듯 “D&D를 하는 방법”에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여러가지 D&D 게임의 장면 중 하나라고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끊임없는 말장난에 다들 웃고 떠들고 즐기는 유머러스한 세션이나, 모여 앉자 마자 신나게 주사위를 굴려가며 던전의 문을 발로 차고 화염구Fireball부터 쏘고 시작하는 게임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게임에 참여하는 모두가 즐겁다면, 그 게임은 옳습니다.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던전 마스터가 게임적으로 했을 법한 이야기는 [DM: ] 으로, 수날의 플레이어가 게임적으로 했을 법한 이야기는 [수날: ] 로 표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그 외의 모든 묘사 역시 기본적으로는 던전 마스터가 했을 이야기이긴 합니다.


부유섬의 끄트머리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성당에서 튀쳐 나가며 부서진 유리와 벽돌 파편들이 사방에 흩날려 떨어집니다. 드래곤의 온몸에 난 상처에서 불타는 피가 흘러내리며, 미쳐 날뛰는 끔찍한 비명이 하늘을 둘로 가릅니다. 야만적인 교활함과 가학적인 재치를 자랑하던 질파니르(Zilfanyr)의 흉계는 드루이드의 주문으로 모두 사라졌고, 이제 사악한 레드 드래곤은 그저 흉포한 괴물의 본능만 남아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수날의 모습?) <이미지 출처: myfreewallpapers.net>

수날(Sunaal)은 자신이 늘 하던 방법을 골랐습니다. 미노타우르스 바바리안은 뛰어 올라 드래곤의 등에 올라탔고, 등에 짊어진 거대 도끼를 양손으로 움켜 쥐었습니다.


DM: 근력 판정 잠깐 해볼래요?
수날: 어… 좋진 않네요. 17인데?
DM: 충분해요. 드래곤이 아직 전속력으로 날고 있는건 아니니깐.

수날은 심하게 다쳤습니다. 두툼한 손을 도끼에서 떼어 자신의 브레스트 플레이트 갑옷에 뚫린 구멍에 대 보았습니다. 상처에서는 온통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붉은 피를 자신의 도끼 날에 문질렀습니다. 그러자 피는 금방 얼어붙었고, 무기는 단단히 굳었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모습) <이미지 출처: D&D Official Website>

그는 잠깐 눈길을 돌려 멀어지는 부유섬을 보았습니다. 드래곤은 직선으로 날고 있었습니다. 드래곤은 상처로 미쳐 날뛰느라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의 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고, 그는 왼손을 마법의 귀걸이에 대어 속삭임을 가까이 들었습니다.


“이봐 덩치 큰 친구. 어떻게 되어가는 거여?” 드워프의 목소리는 애써 평소의 톤을 유지하며 경악을 숨기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놈이 땅에 닿기 전에 뛰어내리라고.”


수날은 펄럭이는 진홍색 날개 아래를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2천 피트(약 700m)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였고 하늘에는 정오의 태양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걱정말게 기디언. 내가 해치울테니.”


엘프 목소리가 귀걸이에서 들려왔습니다. 더 걱정되는 투였습니다. “서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지마. 우리가 네 모습을 놓치기 전에 다음 계획을 세워야지. 응?” 드루이드의 목소리는 이미 걱정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메릴은 영리한 여자애였고, 이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구멍난 폐에서 고통이 솟아 올랐지만, 그는 껄껄 너털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냥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꼬마야. 떨 필요 없어. 이놈이 너희들이랑 3번째로 마주치게 둘 순 없어. 너희들에게는 다른 사명도 많이 남아 있지 않나.”


DM: 좋아요. 여러분은 기본적으로 전투 상황에서 빠져 나왔어요. 하지만 일단 저는 하우스룰로 당신의 격노(Rage)가 20초 정도는 더 남았다고 판정할께요. HP는 얼마나 남았어요?
수날: 10점 정도요.
DM: 좋아요.

도끼가 손아귀에서 떨리고 있었습니다. 격노가 점차 사라져가는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격노가 그를 여전히 움직이게 해 주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단단히 악물고 다시 도끼를 높이 들어올렸고, 드래곤의 등을 내리 찍었습니다.


수날: 머리 쪽으로 갈께요.
DM: 좋아요. 3칸 정도 거리에요. 운동 판정 한번 해보세요.
수날: 19 + 얼마… 정도 되네요.
DM: 좋아요 충분해요.

그는 숨을 고르고는 드래곤의 등 위를 기어 긴 목 위로 올라 탔습니다. 하지만 드래곤은 목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좋아. 얘들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내 꾸러미에 있는건 이제 다 너희들 거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는 길게 숨을 쉬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이게 올바른 결정일 것입니다. 그는 52년의 여름을 살았습니다. 그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가족 하나를 먹여 살린 황소도 드물었는데, 그는 두 개의 가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거다. 너희들 모두 자랑스러워.”


그는 귀걸이를 떼 내 버렸습니다. 동료들은 이 다음의 일을 들을 필요가 없었으니.


DM: 6초 남았어요. 음… 뭘 하실 건가요?
수날: 네네…. 음… 그러니까… 풍경은 멋진가요? Yeah, Yeah, I’m uh, I’m gonna.. is it a nice view?
DM: …평생 다시 없을 정도로요. ...best you’ve ever seen.


(수날의 최후) <이미지 출처: reddit>

바다는 그 아래로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소금기 머금은 공기가 그의 구멍난 폐에 가득 찼고,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잘 살아 왔습니다. 그가 네이네레(Nynere)를 만나기 전, 그녀가 자신에게 메라(Mera)를 낳아주기 전, 젊은 황소일 때 그는 아버지를 따라 그의 나라와 신을 위해 깃발 아래에서 싸웠습니다. 그의 갈기가 회색으로 바래기 전, 그들의 신이 죽기 전, 와이트들이 그의 마을을 끔찍하게 학살하기 전, 그 모든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의 복수자의 맹세를 했었습니다.


그는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의 가족에게 돌아갈 준비를.


수날: 좋아요. 얼음의 의식 일격으로 머리를 공격할께요. 무모함 적용하고요 5를 더하고… 계산하면… 25네요.
DM: 피해 주사위 굴리세요.
수날: 22점 나왔네요.
DM: 좋아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는 얼어붙은 도끼를 들어올려 내면의 야수성과 함께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다시 한번 잘 부탁하네. 내 오랜 친구” 그는 중얼거리고는, 양손으로 도끼를 잡고 드래곤의 목을 내리 쳤습니다.


얼어붙은 고대의 칼날이 비늘과 살, 뼈를 가르고 드래곤의 머리를 쪼갰습니다. 길다란 비명을 내지르며, 드래곤은 날개를 멈추고 떨어져 내렸습니다. 거대한 괴물은 마치 바위처럼 바다를 향해 떨어져 갔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드래곤에게서 떨어져 홀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괜찮았습니다. 그는 괴물 옆에서 생을 끝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는 눈 속 가득 비친 파란 것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어도 바다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보로스의 아들 수날, 네이네레의 남편, 메라의 아버지, 아침 노래 일행의 일원은, 그렇게 마지막 눈을 감았습니다.


(수날 월페이퍼판) <이미지 출처: reddit>

DKSA에서


저희는 이 이야기의 원작자에게 메일을 보내 번역과 전제 허가를 받았습니다. 공개된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 역시 지난 2월에 처음 이 글을 보았을 때에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의 경험상 RPG, D&D를 하시다보면 분명히 이런 장면을 맞이할 순간이 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좋은 마스터의 자세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마스터의 반응을 보시면, “좋아요”라는 응답으로 플레이어의 구상과 희망을 끌어내는 모습을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플레이어의 구상을 살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마스터는 분명 많은 플레이어들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RPG의 즐거움 중 큰 부분은 바로 이처럼 서로 사전에 약속하지 않았더라도 뜻을 모아 멋진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혹 원문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 링크를 하단에 첨부합니다. 레딧 페이지로 연결됨을 유의해 주십시오.



삼라만상의 카드1 - 노움 위저드의 슬픔: https://www.dndkr.com/post/column006

삼라만상의 카드2 - 거울 속에서의 죽음: https://www.dndkr.com/post/column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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