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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의 카드 1 - 노움 위저드의 슬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D&D 5판 한국어판 출시를 앞두고 이런저런 번역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칼럼(을 빙자한 소개글)을 쓰는 DKSA의 일원입니다. 자기소개는 생략할게요. 그것보다는 천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양에 지정된 단어만 2천개쯤 되는 것이다보니 이야기하고픈 것이 너무 많거든요!


그중에서도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진짜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어느 가엾은 노움 위저드의 이야기지요.


저는 D&D5판에서는 마스터보다 플레이어를 많이 했지요. 저희 팀은 5명인데, 가끔 결석하는 사람도 있다보니까 그냥 4명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장기 플레이를 하다보면 늘 있는 일이지요.


저희 파티는 마스터랑 신나게 드잡이를 하면서 그래도 재미있게 10레벨까지 쑥쑥 컸습니다. 바바리안, 레인저, 위저드, 바드, 팔라딘인데, 제가 어떤 캐릭터인지는 비밀로 할께요! 마스터가 드잡이를 재미있어 했을지는 잘 모르겠군요.


여튼 저희는 나름대로 유명한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 늙은 노움 위저드에게 의뢰를 받았지요. 굉장히 깊은 해저 동굴에 가서 그곳에 있는 주문책을 가져오라는 의뢰입니다. 물건 찾기는 제법 흔한 으뢰 중 하나지요. 유명한 베테랑 모함가 일당이다보니 주문책을 찾는 것까지는 별로 어려울게 없었어요. 상당히 손쉬운 의뢰였어요. 아, 도중에 레인저가 몇번 죽을 뻔 하기는 했지만 그건 넘어가지요. 저희는 클레릭도 드루이드도 없어서 바드랑 팔라딘이 살려야 했기 때문에 더 고생한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런. 이미 언급했군요.


하여간 나중에 마스터가 저희가 나중에 번역할 책인 “자나사의 만물 가이드(Xanathar’s Guide to Everything)”에 나오는 주문을 몇개 가르쳐줘서 그나마 좀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저희는 해저 동굴에서 주문책을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쉬운 일이라니까요. 그리고 위저드가 순간이동의 원Teleportation Circle 주문으로 다시 노움의 탑 지하의 마법진으로 왔어요.

그런데 그때 마스터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도착한 곳은 이제 지하가 아니에요.”라고요.


탑이 완전히 무너졌던 겁니다. 마스터가 저희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뭐 별 수 있나요. 일단 탑의 잔해에서 왜 탑이 이렇게 무너졌나 살펴보고 (겸사겸사 건질만한 물건이 좀 남았는가 살펴도 보고) 의뢰주인 노움 위저드의 시체라도 찾을 수 있나 봤어요. 여러분, 레인저 무시하지 마세요. 이런거 조사할 때에는 레인저가 정말 제대로 활약하거든요.


레인저가 조사해보니 드래곤이 무너트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노움 위저드는 드래곤이랑 싸우다가 산산조각으로 죽은 것 같고요. 놀랍게도 드래곤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방향까지 알아냈죠. 어떻게 알아낸거지…? 이번에는 죽을 위기가 없었는데...?


저희는 10레벨 모험자답게 드래곤을 추적해서 털어먹자는 쪽이랑 어쨌든 의뢰는 망한것 같으니까 주문책이나 팔아먹자는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쉽게 끝날 토론이 아니었어요. 어쨌든 저희가 본거지로 삼는 도시에 와서 재정비를 하자는데까지는 다들 동의를 했습니다.


마을에 와서 항상 묵는 여관에 갔더니, 짜잔! 거기 우리에게 의뢰한 그 노움 위저드가 있더라고요. 조금 더 젊어진 상태로요.


노움 위저드는 자기가 복제Clone이라는 주문을 써서 예비로 만들어진 몸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노움 위저드는 주문책을 찾아줘서 고맙긴 고마운데 탑이 박살이 난 덕분에 지금 보수를 주긴 어려우니깐 같이 드래곤을 잡으러 가자고 말했어요.


그날은 이제 게임을 끝낼 때가 되어서 게임을 정리를 했는데 그때 한창 플레이어즈 핸드북을 번역하던 친구가 굉장히 슬픈 표정으로 그랬습니다.


“마스터. 그 노움 위저드는 가짜야.”


마스터를 포함해서 저희는 모두 이상한 표정으로 그 친구를 봤는데, 그 친구가 그러는 겁니다.


“노움은 복제 주문을 못써.”


그런 이야기가 있던가요? 저는 노움 종족 부분을 좀 살펴봤는데 그런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몹시 웃음을 참는 얼굴로) 클론 주문을 보여줬습니다.


This spell grows an inert duplicate of a living, Medium creature as a safeguard against death.


저희가 한 한글 번역은 이렇게 됩니다.


“이 주문은 죽음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살아있는 중형 크기 크리쳐의 복제를 만들어 냅니다.”


Medium? 중형? 왜? 어째서?


저도 그렇고 마스터도 그렇고 우리 팀 사람들 모두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왜? 소형 차별하나? 게임이 끝났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그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어째서 중형만? 집에서 인터넷에 들어가 D&D 커뮤니티들을 뒤져봤지요. 다들 마찬가지 반응이었습니다. 말이 안된다. 노움과 하플링 위저드들은 어쩌란거냐.


그나마 다행인건, RPG는 마스터 재량에 따라서 이런 제한은 무시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저희 마스터는 생각이 좀 달랐나 봅니다.


노움 위저드(의 클론)은 졸지에 의뢰인의 사칭범이자 사악한 쌍둥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드래곤과 편을 먹고 형을 죽인 다음 주문책을 얻어내려는 악당이 되어버렸지요!

저희는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마스터! 너마저!


저희가 주문책을 가져다주고, 같이 드래곤의 소굴로 들어가서 드디어 드래곤 앞에 서니까 갑자기 하늘을 날면서 웃음을 터트리더라고요.


“하하하 멍청이들! 노움은 복제 주문을 쓸 수 없다는 것도 몰랐느냐! 이제 죽어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음, 마법 무효화Dispel Magic을 날렸어요. 멍청했지요. 충분히 거리를 벌린 다음 외쳤어야지. 그리고 드래곤이 우리 모두를 노릇노릇 굽기 전에 쌍둥이 동생 먼저 다져 버렸습니다.

뭐 드래곤도 잡긴 잡았어요. 레인저가 죽긴 했지만요. 두 번 쯤. 물론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저희 팀 친구들은 번역 과정에서 다시 복제 주문을 살펴 봤습니다. 분명히 있었어요.

“중형(Medium)”. 안타깝지만, 규칙대로 가자면 노움과 하플링 위저드는 복제 주문을 못써요. 이유는 모르겠네요.


만약 노움 위저드를 하고 있는데 진짜로 복제가 하고 싶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겠네요. 마스터랑 이야기를 해서 제한을 빼시든가, 아니면 잘 아는 드루이드를 찾아가서 환생Reincarnate 주문을 받아서 중형 크기 크리쳐로 변하길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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