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 칼럼 7: D&D의 롤플레잉

안녕하세요! DKSA 번역팀입니다. 이번주는 다른 칼럼들이 준비되는 동안, D&D 플레이어 여러분들이 놓치기 쉬운 주제 하나를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바로 “D&D에서의 롤플레잉”에 대한 이야기죠! 많은 분들이 D&D 5판을 하며 재미있는 전투와 캐릭터 육성을 거론하는데, 사실 D&D 5판은 역할연기를 강조하는 “서사적 게임”으로서도 충분히 손색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D&D의 서사적 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하나씩 소개할까 합니다.

성향(Alignment)과 D&D 롤플레잉의 역사

1974년 D&D가 “최초의 롤플레잉 게임”으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캐릭터 연기를 위한 요소들은 주어져 있었습니다. 최초의 D&D에서는 질서(Lawful), 혼돈(Chaotic), 중립(Neutral)의 3개 성향이 주어졌습니다. 이 성향들은 사회의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얼마나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 시대의 D&D는 기본적으로 던전을 파는 모험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악한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기본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던전이라는 극한 환경에서는 캐릭터의 선악이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절 “캐릭터 롤플레잉”이라는 것은 “연기”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모험자 일행 내에서의 역할(Role)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Role in Party)을 중시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977년의 베이직 세트에서는 질서-중립-혼돈과 더불어 선-중립-악의 기준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D&D가 던전 모험의 연속에서, “세계”를 가진 게임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초의 D&D는 던전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며 얻은 보물과 경험치를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그렇게 성장시킨 캐릭터로 다시 더 깊은 던전에 내려가는 것의 연속이었을 뿐입니다. 마을은 던전에서 얻은 보물을 처분하고 캐릭터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캐릭터의 선악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생겨나며 캐릭터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정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얼마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정해졌고, 이때부터 2가지 기준으로 이루어진 9개 성향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론, D&D에서 말하는 “질서”, “혼돈”이나 “선”, “악”이 철학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서 “질서”나 “선”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는 점 역시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여하간 9개 성향의 캐릭터 성격 표현 방식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선과 선, 악과 악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서브컬쳐 장르로도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AD&D가 주춤하던 90년대 말에는 이미 다른 TRPG 장르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던 시절입니다. 이 시점에서 점점 캐릭터 연기가 강조되는 새로운 규칙들이 속속 등장하며 D&D 계통에서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다양함을 보여주었습니다. TRPG는 더이상 던전을 탐험하다 나와서 다시 던전에 들어가는 게임이 아니었고, “롤플레잉”은 일행 내에서의 역할(Role in Party)보다는 캐릭터로서의 역할(Character Role)의 연기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판타지 세계(혹은 다른 세계)를 자신과 다른 인물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RPG의 즐거움 중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성향의 문제점과 해결법 모색

한편, 9개 성향은 점차 캐릭터 표현을 도와주는 요소가 되기 보다는 연기를 얽매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성향의 문제점은 먼저 캐릭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였어야 할 성향이 캐릭터의 성능에까지 관계하게 되면서 발생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AD&D 2nd 당시에 팔라딘 클래스를 하기 위해서는 (능력치도 골고루 매우 높아야 했지만) 무엇보다 성향이 질서 선(Lawful Good)이어야 했습니다. 질서 선 성향은 (당시의 해석으로서는) 사회의 법질서를 지키며 자신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성격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 즉, 자신이 바라는 성능의 캐릭터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성향을 연기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다양한 해프닝과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RPG 우스개들이 생겨났습니다. 질서 선 성향을 유지하면서 캐릭터에게 더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기 위해 다양한 억지 논리들이 개발되었고, “어떤 성향 캐릭터는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AD&D는 캐릭터 연기를 중시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플레이어들은 더 다양하고 복잡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는 다른 규칙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2000년대 D&D 3판/3.5판이 되면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3판/3.5판은 d20 SRD를 도입하며 게임적으로는 대단히 발전하였으나, 여전히 캐릭터 연기에 대한 부분은 AD&D 시절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9개 성향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했고, 어떤 클래스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성향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3.5판 중반부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법들이 모색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변환점은 에버론의 등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버론은 캐릭터의 성향과 클래스, 신앙을 과감하게 분리하였습니다. 에버론에서는 선한 종교를 믿는 악한 클레릭이 가능했고, 특정한 클래스를 얻기 위해 특정한 성향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캐릭터의 성능과 캐릭터 연기에 관한 부분을 분리하자 해결의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형 크리쳐에 대해서는 팔라딘의 악 탐지(Detect Evil)나 성향 파악(Know Alignment)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합니다. 4판에서는 보다 실험적인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과거 9개 성향을 5개로 압축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질서 선은 선 성향의 극단으로 주어졌고, 반대로 혼돈 악 역시 악 성향의 극단으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캐릭터 클래스와 성향, 신앙의 분리 역시 (팔라딘 등의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성향의 압축은 기존 팬덤의 반발 외에도 필요가 없어졌는데, 더이상 성향이 캐릭터의 설계에 있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성능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9개 성향은 여전히 선과 선, 악과 악 사이의 싸움을 표현하기에 좋은 방식이었고 캐릭터 성격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5판에서는 다시 9개 성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5판에서의 역할 연기

D&D 5판은 앞서 이루어진 성향의 문제점 해결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더해 새로이 캐릭터의 성격과 연기를 위한 요소들을 추가했습니다. 이 요소들 중에는 다른 RPG 게임들에서 시도되었던 방식들을 도입하려 시도한 부분도 있습니다. 캐릭터의 성격과 성능은 거의 완전히 분리되었고, 클래스에 따라 반드시 특정한 성향을 골라야 하는 제한 역시 사라졌습니다. 또한 D&D 5판은 역대 최초로 플레이어의 캐릭터 성격 연기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는 규칙을 공식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그 결과, 5판은 지금까지의 모든 D&D 중 가장 연기자 플레이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판에서 캐릭터 성격 연기에 관계하는 부분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향: D&D의 전통적인 9종 성향을 도로 살린 것입니다. 질서-중립-혼돈, 선-중립-악의 두 기준으로 이루어진 9종 성향은 캐릭터가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가, 얼마나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배경: 배경은 캐릭터가 클래스를 가지기 전에 경험했던 직업이나 생활 환경등을 말합니다. D&D 5판에서, 배경은 종족, 클래스와 함께 캐릭터를 규정짓는 중대한 부분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캐릭터는 배경에 따라서 배경 요소(Background Feature)를 얻게 됩니다. 이 배경 요소가 전투에서 유용한 능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 연기와 막간 활동 등에서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족과 클래스에 더해 배경이 도입되며, 캐릭터의 표현폭이 더 커진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배경은 완전히 역할 연기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경에 따라 기술 숙련이나 도구에 대한 숙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격 특성(Personality Trait), 유대(Bond), 이상(Ideal), 단점(Flaw): 이 4종의 요소는 함께 개성(Characteristic)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격들은 캐릭터 제작시 배경을 정하면서 함께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캐릭터가 지닌 성격적인 특징, 캐릭터가 유대를 느끼는 사물이나 인물, 사건에 대한 애착, 캐릭터가 지닌 장기적이고 사상적인 목표, 캐릭터가 지닌 성격적 단점이나 들키면 곤란한 비밀 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요소들은 단순히 성향과 배경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캐릭터의 인물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플레이어즈 핸드북(Player’s Handbook: 이하 PHB)에서는 배경에 따라 추천하는 캐릭터의 성격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꼭 추천하는 것을 따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요소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고양감(Inspiration): 원하는 d20 판정에 이점을 받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인 고양감은 이러한 캐릭터 연기에 대해 보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캐릭터 연기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양감을 얻을 수 있지만, PHB에서는 위의 성격 4요소에 맞는 캐릭터 연기를 했을 경우 고양감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연기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성향

D&D 5판은 과거 3.5판까지의 9종 성향을 다시 가져왔고, 여기에 더해 4판에서 처음 도입된 성향없음(Unaligned)을 더했습니다. 성향은 캐릭터가 지닌 도덕적인 지표이자 기준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출판된 클래식 D&D에서는 같은 단어를 “가치관”이라 번역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번역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성향은 캐릭터가 어디에 행동의 기준을 두는가, 무엇을 목적으로 행동하는가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다만, 5판에서는 이 성향이 절대적으로 캐릭터의 행동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같은 성향이라 할지라도 천차만별로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똑같은 혼돈 악(Chaotic Evil) 성향의 크리쳐라 하여도, 날뛰는 오우거와 귀족적인 뱀파이어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나 공공의 규범을 무시하며,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같이 혼돈 악으로 묶이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을 위해 마련된 PHB에서조차 “설명에 쓰여진 그대로 행동하는 완전히 전형적인 캐릭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으니 만큼, 각 성향의 정확한 해석은 오로지 플레이어들 각각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질서 선(Lawful Good)

질서 선 성향의 캐릭터는 사회적인 규범을 지키며, 그 규범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도모합니다. 질서 선 성향은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타지에 등장하는 선하고 명예로운 기사들 대다수가 질서 선 성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대신 권위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립 선(Neutral Good)

중립 선 성향의 캐릭터는 규범을 무시하지 않지만, 일단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공공에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약간의 법 위반 정도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이들입니다. 또한 개인의 자유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자유를 통해서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혼돈 선(Chaotic Good)

혼돈 선 성향의 캐릭터는 사회의 규범이나 법, 권위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최대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행동합니다. 폭군의 압제에 저항하는 용사들이 대표적인 혼돈 선 성향의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돈 선 캐릭터들은 사회적 권위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질서 중립(Lawful Neutral)

질서 중립 성향의 캐릭터는 법과 질서, 권위에 최고의 무게를 둡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정해진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중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원칙을 중시하는 판관이 대표적인 질서 중립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