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DKSA입니다. 이번 칼럼은 D&D5판의 홈브류 컨텐츠 정책과 던전 마스터즈 길드(Dungeon Masters Guild: 이하 DM길드)에 대한 내용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홈브류 컨텐츠란 무엇인가?
홈브류(Homebrew)란 본래 “집에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RPG에서 홈브류 컨텐츠란, 소비자가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는 모든 컨텐츠를 뜻합니다. 즉,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 이하 WotC)가 제작하지 않고 던전 마스터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데이터와 추가적인 규칙들, 자작 캠페인 세계와 지도 등이 모두 홈브류 컨텐츠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RPG와 홈브류 컨텐츠의 관계
RPG는 태생적으로 홈브류 컨텐츠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30년 넘게 대단히 많은 모험들이 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왔습니다만, 실제 그 모험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 나가는 던전 마스터가 모든 것을 오로지 “책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RPG는 임기응변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이야기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RPG를 하다보면 거의 분명히, 반드시 홈브류 컨텐츠를 제작하고 사용해야 하는 시점이 생깁니다.
당장 “판델버의 잃어버린 광산(Lost Mine of Phandelver)”를 시작하려 해도, 맨 처음 고블린의 기습 장면을 위해 (원래 스타터 셋에는 없는) 지도를 그린 마스터는 그 순간 이미 “홈브류 컨텐츠”를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RPG는 태생부터 홈브류 컨텐츠를 이용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홈브류 컨텐츠에 대한 노하우는 과거부터 많은 여러 D&D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홈브류의 노하우는 다시 제작자에게로 피드백되어 규칙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홈브류 컨텐츠”가 극적인 성장을 이룩한 것은 d20 SRD가 공개된 2000년대 초반입니다. 공개 게임 라이센스(Open Game License)는 그 당시까지 애매하던 홈브류 저작권의 한계선을 명백히 표시하였습니다. 창작 의욕이 있다면 누구나 공개된 d20 규칙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며, d20은 폭발적으로 몸집을 불려 갔습니다. d20의 성공 이후, 유사한 방식으로 규칙의 얼개를 공개하는 방식이 RPG 출판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되기도 하였습니다.
팬 컨텐츠에 대한 WotC의 입장
홈브류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팬 컨텐츠(Fan Contents)에 대한 언급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홈브류 컨텐츠가 “게임 진행에 관계되어 제3자가 제작한 컨텐츠”라면, 팬 컨텐츠는 홈브류를 포함해서 “팬이 만들어낸 컨텐츠” 전체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D&D에 관계된 영상, 팟캐스트, 일러스트레이션, 음악, 이야기 등이 모두 팬 컨텐츠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DKSA가 지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D&D에 관련된 팬 컨텐츠 제작에 대해 문의를 해 오셨습니다. 이에 대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사실 항상 동일합니다.
저희는 한국 내에서 WotC의 저작권 및 기타 법적 권리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WotC의 저작권에 관련된 내용을 저희에게 문의하시는 것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의 답변이 WotC의 입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플레이어 여러분의 D&D의 팬 컨텐츠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D&D 5판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트위치, 유튜브 등에서 D&D 관련 채널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저희 역시 이 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한국어로 된 D&D 팬 컨텐츠가 활발하게 생산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따라서 저희는 팬 컨텐츠에 대해 문의하시던 분들에게 항상 WotC가 발표한 “팬 컨텐츠 정책 페이지”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해당 페이지는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WotC의 팬 컨텐츠 정책 페이지: https://company.wizards.com/ko/fancontentpolicy
위의 정책 페이지를 읽어보신다면 아실 수 있겠지만, WotC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재창출해 수익을 얻는 것만 아니라면 전반적으로 팬 컨텐츠에 대해 자유로운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수익 역시 컨텐츠 판매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이나 기부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비교적 관여하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에 관련된 사항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은 저희가 아니라 WotC와 변호사의 문제이긴 합니다.
세계 속 팬 컨텐츠 수익의 구조들
다만 실제로 위의 컨텐츠 정책에 의거해, D&D 5판을 통해서 수입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저희는 대표적인 경우 몇 가지를 예로 들고자 합니다.
트위치, 유튜브 등의 채널 후원
실제로 가장 많은 수의 팬 컨텐츠 제작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채널들을 실로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게임 실황을 라이브스트림하거나, 이후 녹화해 공개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새로운 규칙들을 소개하거나, WotC의 새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거나, D&D를 소개하는 내용들 역시 영상이나 음성 채널로 만들어져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상 / 음성 채널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공개되어야 하며 오직 후원에 의한 수익만이 허가됩니다. 크리티컬 롤(Critical Role)이나 다이스, 카메라, 액션(Dice, Camera, Action) 등 인기 채널의 경우, 동시에 수천명 이상이 스트림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파트레온 등을 통한 후원
창작자를 후원하는 플랫폼인 파트레온(Patreon) 등을 통해서 후원을 받는 경우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파트레온은 “제품”이 아니라 “창작자”를 후원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이 후원을 통해 만들어지는 컨텐츠가 무료로 공개되기만 한다면 WotC의 팬 컨텐츠 정책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파트레온에는 특히 판타지 세계의 지도를 만들거나 던전 및 지형의 지도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DM길드
DM길드는 대단히 특별한 방식의 홈브류 컨텐츠 후원 방식입니다. DM길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5판과 SRD, OGL, 그리고 DM길드
WotC는 D&D5판의 문을 열며, 지금까지의 라이센스 정책을 두 가지로 변경하였습니다.
첫 번째 방식은 과거와 같은 OGL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는 공개된 5판의 SRD를 이용하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이 상품을 만들고 별개의 플랫폼에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 경우는 WotC의 저작권및 상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방식으로 새로이 공개된 것이 바로 DM길드입니다. 이것은 D&D를 즐기는 플레이어와 마스터들이 자신들의 홈브류 컨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만약 본인이 만든 홈브류 컨텐츠가 충분히 상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원하는 파일 형식으로 제작해 원하는 가격으로 DM 길드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DM 길드는 SRD와 달리 포가튼 렐름즈 배경을 사용할 수 있으며, 비홀더, 마인드 플레이어 등의 “등록된 상표” 개체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DM 길드로는 자신의 독자적인 캠페인을 등록할 수 없습니다. (독자적인 캠페인을 판매하려면 OGL에 맞추어 첫번째 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DM길드는 OGL과는 다른 방향에서 D&D 5판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DM길드에는 세계 곳곳의 플레이어와 마스터들의 아이디어가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DM길드가 순수 개인들만의 플랫폼인 것도 아닙니다. 먼저 WotC가 모험자 연맹의 공식 시즌 모험들을 배포하는 배포처 역시 DM길드입니다. 또한 DM길드에는 수많은 “전문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버론의 원작자인 키스 베이커(Keith Baker)가 DM길드를 통해 에버론의 추가 규칙인 “모그레이브 미셀러니(Morgrave Miscellany)”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그 외에도 과거 WotC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던 서드파티들 상당수가 환호하며 DM길드를 통해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DM길드를 통해 홈브류 컨텐츠를 판매할 경우, 창작자는 매출의 50%를 얻을 수 있습니다. (DM 길드에 따르면 인출시마다 약간의 수수료가 붙는다고 합니다.) 또한 구매자는 “개인적 사용”의 한도 내에서 DM길드에서 구매한 파일을 인쇄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합니다.
DM 길드를 통한 게임의 확장
사실 D&D 5판은 그 인기에 비하면 추가 규칙이나 확장 규칙의 양이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발매 이후 5년차를 맞이한 시점에서 배경 세계에 관련된 서적은 웹에서 공개된 에버론을 포함해서 3권이며, 캐릭터에 관련된 추가 선택지를 중심으로 한 서적은 자나사의 만물 안내서(Xanathar’s Guide to Everything: 이하 XGE) 뿐입니다.
실제 많은 플레이어와 마스터들이 새로운 캐릭터 선택지에 갈증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WotC는 파헤쳐진 신비(Unearthed Arcana: 이하 UA)를 통해 테스트를 반복해 완전히 검증이 끝나지 않은 규칙은 공식으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여기서 DM 길드의 새로운 역할이 등장합니다. 일반 사용자나 서드 파티가 개발한 캐릭터 선택지들이 DM 길드를 통해 판매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종족, 하위종족과 새로운 클래스, 하위클래스, 재주, 주문, 마법 물건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DM 길드에서 판매되는 캐릭터 선택지들은 “공식(Official)”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DM 길드에서 판매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못해 밸런스가 좋지 않거나, 의도한 것과는 다른 성능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잘라 말해, WotC가 공식으로 인정하고 출판한 것들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중 몇몇은 거의 공식적인 것에 준할 정도로 뛰어난 것도 나옵니다. 위에서 소개한 키스 베이커의 “모그레이브 미셀러니”가 대표적입니다. 에버론의 길잡이 안내서(Wayfinder’s Guide to Eberron)이 전반적으로 배경 설명에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 선택지가 거의 제공되지 않은 것에 비해, 모그레이브 미셀러니는 에버론의 테마와 분위기에 맞으면서 균형잡힌 성능을 지닌 새로운 클래스들과 재주, 추가 규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에버론을 배경으로 게임을 진행하고자 한다면 거의 필수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WotC가 “공식”으로 출판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소품들을 DM길드에서 공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길드마스터의 라브니카 안내서(Guildmaster’s Guide to Ravnica)가 공개된 이후, 이와 유사한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의 세계들인 익살란(Ixalan)이나 칼라데쉬(Kaladesh), 이니스트라드(Innistrad), 젠디카르(Zendikar)를 D&D에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DM길드에서 무료로 공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매거진에서 공개된 내용들 중에서 유용한 것들이나 모험 역시 DM길드에서 꾸준히 공개되고 있습니다.
다국어 지원 및 DKSA의 계획
안타깝지만, DM길드 자체는 현재 다국어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DM길드를 통한 홈브류 컨텐츠 구매 역시, 외화 결제가 가능한 VISA 혹은 MASTER 카드를 이용하거나 PAYPAL등의 결제 수단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DM길드에 올라와 있는 홈브류 컨텐츠들이 꼭 영어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유럽 언어들 외에도 일본어로 작성된 소수의 컨텐츠들이 등록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중국어(간체)나 스웨덴어처럼 D&D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언어로 이루어진 컨텐츠 역시 등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DM길드에 컨텐츠를 올리기 위한 규칙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희 DKSA는 이후 DM길드를 통해 저희의 컨텐츠들을 공개할 계획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몇가지 중요한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DM길드의 커뮤니티 컨텐츠 제작 규칙을 지킬 경우 WotC의 이미지들 중 상당수를 차용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룰북이나 다른 규칙을 직접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인 시각 자료 획득에 매우 유용합니다. 저희의 칼럼들 역시 홍보용으로 이미지 사용 허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이것을 배포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DM 길드를 통해 배포하게 될 경우, 최소한 WotC가 저작권을 가진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보다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격 설정이 자유롭다는 점이 있습니다. 실제 DM길드에 올라오는 수많은 컨텐츠들 중 상당수는 “원하는 만큼만 지불하십시오(Pay What You Want: 줄여서 PWYW)” 방식입니다. 저희는 D&D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한 컨텐츠들을 유료로 배포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가격 설정이 가능하다는 점은 저희에게도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만약 저희를 지원하길 원하는 분이 있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이후 만들어 공개할 컨텐츠들 중 일부는 DM길드를 통해 유상판매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스트라드의 저주”를 발매하며 DM들이 “스트라드의 저주”를 보다 편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움말 컨텐츠를 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내용을 내부에서 의논 중에 있습니다. 실제로 DM 길드에는 공식 하드커버 모험의 참고서(Compendium)들이 꽤 잘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만 이 내용은 아직 의논중인 단계로, 저희의 최우선 과업은 가능한 한 빠르고 정확하게 다른 공식 출판물들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이므로 그에 남는 여력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셋째로, 저희가 DM길드를 통해 한국어 홈브류 컨텐츠를 유통함으로써 다른 플레이어나 마스터 분들 역시 DM길드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드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D&D를 사랑하는 플레이어와 마스터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의 노하우가 어떤 식으로든 새로 게임을 시작하는 플레이어 분들에게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다면, 저희의 노고 역시 보다 편해질 것입니다.
맺으며
취미의 확산 정도는, 그 취미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수와 비례합니다. D&D 5판이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에는, 보다 쉽게 팬 컨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다른 마스터와 플레이어들의 홈브류 컨텐츠를 어렵지 않게 찾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저희는 한국 플레이어 여러분 역시 DM길드를 적극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희 법적인 안정성을 갖추고 컨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DM길드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홈브류 컨텐츠의 시대이며, 여러분 역시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경험을 이용해 한 사람의 창작자로 거듭나실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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