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KSA 지원팀입니다. 저희는 새로 D&D를 시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플레이어즈 핸드북에 등장하는 클래스들을 하나씩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가나다 순서에 따라,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클래스는 팔라딘입니다.
우리 얘한테 뭐 좀 물어볼게 있으니까 나가 있어.
D&D 역사를 통틀어 단 한번도 약했던 적이 없던 클래스가 바로 팔라딘입니다. 팔라딘은 본래 D&D 초기 시절, 파이터가 선택할 수 있는 하위 클래스의 일종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팔라딘을 하기 위해서는 시작시 굴려서 나오는 능력치가 대단히 높아야만 했습니다. 매력은 17 이상이어야 했고, 지혜 13, 근력 12, 지능과 건강도 9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대체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주사위를 굴려보다가 뭔가 대단히 높게 나오는 것 같다고 하면 “(주사위) 신에게 선택받았다.”며 팔라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AD&D 2nd 시절 팔라딘은 지금의 컨셉 대부분을 갖추었습니다. 클레릭과 유사한 약간의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파이터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등 장비를 다 갖출 수 있으며, 그에 더해 질병에 걸리지 않고 손을 대는 것으로 동료들을 치료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막강한 클래스에게도 중요한 제한이 있었으니, 역할 연기가 대단히 경직되었다는 것입니다. 4판 이전까지, 팔라딘 캐릭터는 무조건 ‘질서 선(Lawful Good)’ 성향이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AD&D 시절에는 가질 수 있었던 마법 물건의 갯수에도 엄격한 제한을 받았습니다. 총 10개 이상의 마법 물건을 지닐 수 없었으며, 갑옷이나 무기와 같은 장비는 그중에서도 더 제한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제한 사항을 어길 경우, 팔라딘은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회개할 때까지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처럼 경직된 역할에 더해, 팔라딘의 고유한 능력이었던 악 탐지(Detect Evil)가 만나며 문제가 더 심각해 졌습니다. 고전적인 AD&D에서 팔라딘의 이미지는 이런 것입니다.
DM: 여러분이 괴물을 쓰러트리자, 사로잡혀 있던 마을 사람들이 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모험자 분들! 저희가 어떻게 보답을 해드리면 될까요? 저희는 가난한 촌것들입니다만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가…”
팔라딘: 됐고, 악 탐지를 켤께요. 빨간색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나요?
DM: ...없어요.
팔라딘: “저희는 단지 저희 의무를 수행한 것 뿐입니다. 보답같은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가요. 가난한 사람들한테 뭐 받으면 저 회개해야 함.
로그: “야”
팔라딘: 차라리 빨간색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DM: “야”
특유의 강력함, 높은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일행의 전면에서 말하게 된다는 것,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능력을 잃는다는 위기감에서 오는 경직성, 악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만나 만들어진 이런 해프닝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아래는 AD&D 팔라딘을 겪어본 사람들의 말입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대접해 준 음식을 먹다가 흘린 것을 회개하기 위해 1주일을 단식해서 기도를 했어.”
“거짓말인게 뻔히 보이는 항복을 해왔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기사도에 어긋나는 거라 받을 수 밖에 없었지.”
“내가 있으면 동료들이 포로에게 약간 과격한 심문을 하지 못하니까 나는 주로 동굴 밖에서 보초를 서곤 했어.”
그러다보니, 이런 역할 상의 제약을 피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발상들이 등장하며 대단히 많은 자극자들이 (순전히 재미를 위해) 팔라딘으로 기행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나 주워먹는다고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팔라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질병 면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AD&D 시절의 팔라딘 역시 무엇이든 먹고 보는 역할을 맡은 적이 많습니다. 특히 질병에 면역이라는 점을 이용해 던전에서 슬라임을 먹었다는 이야기나, 높은 마법 방어능력이 있으니 일단 수상해 보이는 곳에 먼저 팔라딘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어떤 테이블에서나 나왔던 것입니다. 신성 복수자를 들면 마법 저항이 생기는 점을 이용해 일단 마법을 쓰는 적이 나타나면 달라붙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3판에 들어온 시점에서, 팔라딘들은 다른 클래스와 많이 평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기막힐 정도로 높았던 능력치 요구량이 완화되었고, 동일레벨에 비해 너무 강력했던 기능들이 약해졌습니다. 또한 이 시점부터 팔라딘의 역할 제한 역시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질서 선 성향밖에 할 수 없었긴 했지만, 명예 규칙이 많이 완화되었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가호를 잃는 일은 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3.5판의 Unearthed Arcana에서는 “질서 선이 아닌” 팔라딘에 대한 모색이 시작되었습니다. 팔라딘은 3판/3.5판에서도 여전히 다른 근접 클래스 직군(파이터, 바바리안 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완전히 상위 호환으로는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5판 시점부터 상대의 성향을 알아내는 능력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D&D 게임 서사의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했습니다. D&D에서 보다 서사적인 부분을 신경쓰게 되며, 상대의 선악과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해치는 “성향 파악” 능력들을 제거하게 된 것입니다. 팔라딘의 역할과 개성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은, D&D가 “악을 때려잡는 전투의 연속”에서 조금씩 벗어나 캐릭터간의 서사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최소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위의 예시에서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 일행에 팔라딘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행 전체에 가하는 제약과도 같았습니다. 과거 팔라딘 설계에서 가장 고약했던 것은 이러한 제약을 “게임적 성능”에까지 결부시켰다는 것입니다. 4판과 5판 들어서 팔라딘의 성향 제한이 점차 약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4판에서의 팔라딘은 신성(Divine) 원천을 쓰는 방어자(Defender) 역할의 클래스가 되었고, 4판이 시작한 이후 마지막까지 방어 역할에서 최강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레벨부터 플레이트를 입을 수 있는 빵빵한 AC, 구조적으로 높게 책정된 다른 방어 지표들로 인해 팔라딘은 반사 공격이 아니면 거의 손도 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그 대신 공격력은 다른 방어자 클래스보다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었습니다만, 자신의 역할에 가장 충실했던 클래스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AD&D 시절까지 팔라딘의 이미지 중 하나였던 “신성한 복수를 수행하는 자”를 새로운 공격자 클래스인 어벤저(Avenger)가 가져가 버린 것 때문도 있습니다.
5판에서 다시 모습을 보인 팔라딘은 3.5판 당시의 컨셉을 거의 다 되찾았으며, 여기에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보다 자유롭게 역할을 설정할 수 있도록 특정한 성향이나 신앙이 아니라 “맹세”에 능력의 기반을 두게 되었습니다. 5판의 팔라딘은 여전히 신성 주문을 사용하며, 강력한 방어력을 지녔고, 동료들을 치료해 주며 주변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오오라를 발할 수 있습니다. 4판에서 어벤져가 가져갔던 이미지도 다시 가져왔습니다. 역대 “선택받은 자들”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5판의 팔라딘은 많이 평준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팔라딘에게는 많은 매력이 있습니다.
일행 내에서의 역할
전투 조우시, 팔라딘은 파이터, 바바리안 등과 마찬가지로 적과 가장 가까이에서 싸우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물론 팔라딘이 장거리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거리 무기를 썼을 때의 이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가장 폭발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신성한 강타(Divine Smite)는 근접 무기 공격으로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팔라딘은 한정된 주문시전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치유량이 높지는 않지만 응급시에 동료나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팔라딘은 보조적인 치유사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파이터와 마찬가지로, 팔라딘 역시 충분히 충분히 공격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우선 팔라딘도 전투 유파(Fighting Sytle) 상 대형 무기 전투술(Great Weapon FIghting)을 선택할 수 있으며, 모든 군용무기에 대한 숙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주(Feat)가 허용되는 캠페인에서 양손 무기 대가(Great Weapon Master)를 선택한 팔라딘이 그레이트소드를 들고 스마이트를 찍는 모습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정 레벨 이상 진행되는 캠페인에서는 오오라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 조우시 팔라딘은 그야말로 천금같이 귀중한 존재가 됩니다. 주변 10ft 내에 자신의 매력 수정치만큼 모든 내성에 보너스를 주는 팔라딘의 존재는 드래곤 등 압도적인 광역공격을 펼치는 괴물들이나 적 마법사와 맞서 싸울 때 정말 귀중합니다. 특히 드래곤과 싸울 때에는 용기의 오오라(Aura of Courage)와 보호의 오오라(Aura of Protection)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일행의 생사가 여러번 좌우됩니다. 공포스러운 존재감을 이겨내고 무시무시한 브레스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팔라딘은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치명타가 터진다면 로그나 파이터에 비견될 정도로 단번에 엄청난 피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5판에서는 비전투 상황에서도 팔라딘이 더이상 짐덩어리, 일행의 족쇄, 제약구로 기능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맹세를 했느냐에 따라, 냉혹한 복수자 팔라딘이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5판 팔라딘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목적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선한 신이나 정의의 신을 믿는 팔라딘들은 엄격한 도덕적 규칙을 따르지만, 팔라딘이 사용하는 능력의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맹세입니다. 사회적 교류 상황이나 역할 연기에서, 팔라딘은 자신의 맹세를 어떻게 드러내고 연기할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또한 여전히 팔라딘은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인 경우가 많고, 많은 능력이 매력에 관계하고 있으므로 일행의 얼굴 역할로 나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과거처럼 자신의 제약 때문에 일행 전체를 괴롭힐 필요 없이, 자신의 맹세에 따르는 한도 내에서는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도 되고 선택을 넘겨도 됩니다.
워락의 후원자가 모습을 나타내고, 파티에 도움을 줄 때 팔라딘과 워락의 모습
플레이어 유형에 따른 추천
플레이어의 여섯 유형 중에서 팔라딘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최적주의자와 이야기 창조자입니다. 나머지 유형들의 경우, 팔라딘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우선하여 선택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일행의 구성에 따라 필요하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는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연기자
과거 연기자 플레이어들은 팔라딘의 경직된 역할 가능성 때문에 그다지 팔라딘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고결한 기사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그러한 연기 때문에 일행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입견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오래된 연기자 플레이어들 상당수는 팔라딘을 선택하기 전에 고심하곤 합니다. 다행히 5판에서 이루어진 팔라딘의 변화를 이해하는 연기자들은 때로 집착으로까지 느껴지는 팔라딘의 “목적의식”을 곧잘 연기하며 즐거워합니다.
최적주의자
물론 최적주의자 플레이어들의 제1선택은 파이터입니다만, 만약 멀티클래스가 허용되지 않는 게임이라면 팔라딘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선 독자적인 생존능력이라는 지점에서 파이터보다 팔라딘이 더 우수하며, 주문을 이용해 파이터가 할 수 없는 조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멀티클래스가 허락되는 캠페인에서 팔라딘의 매력이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팔라딘은 강타(Smite)의 추가 피해를 치명타가 확정된 다음에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폭발력이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멀티클래스와 재주가 허락되는 캠페인에서 팔라딘을 선택한 최적주의자 플레이어들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쉽게 치명타를 때릴 수 있을까?”로 요약됩니다. 이러한 고민 때문에 많은 최적주의자들이 (클래스 요소가 많이 겹치기 때문에 행동 연쇄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얻을 수 있는게 많이 없는데도) 파이터 3레벨을 올려 챔피언을 가는 것을 고민했었습니다. 자나사의 만물 안내서(Xanathar’s Guide to Everything: 이하 XGE)에서 워락의 새로운 하위 클래스인 헥스블레이드(Hexblade: 주박검사)가 소개되자, 많은 최적주의자들은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1레벨만 올려도 짧은 휴식 당 한 번이지만 어쨌든 적에게 19-20 치명타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매력으로 능력치를 집중할 수 있는 점까지 포함해, 팔라딘/헥스블레이드 설계는 전 세계의 최적주의자들 사이에서 급격한 유행이 되었습니다. 팔라딘의 역할 연기 제약이 많이 사라져서 맹세를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헥스블레이드를 얻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질 것도 아닌 점 역시 좋은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너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누구나 한번씩 가는 길이다보니 지금 와서는 식상해진 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팔라딘은 많은 최적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문에서는 어떤 마법도 찾을 수 없어요."
"아뇨, 문을 위협할 수는 없어요."
"아뇨. 문은 근본부터 사악한 존재가 아니에요."
자극자
D: 여전히 질병 면역 있죠?
DM: 네, 3레벨부터 생겨요.
D: 그럼 전 여전히 슬라임을 먹을 수 있는거네요?
DM: 하하. 5판에서는 슬라임이 질병을 주지 않아요.
D: 어쨌든 그럼 전 여전히 미이라랑 악수할 수 있네요?
DM: ..
사실 AD&D나 3판/3.5판 당시 팔라딘에 대해 생겼던 밈(Memes)들 중 상당수가 자극자 플레이어들의 기행에 의한 것이긴 합니다. 자극자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팔라딘을 꽤 좋아했습니다. 역할 연기나 상황에 대한 제약이 심한 것을 역으로 장애로 인식해, 어떻게든 그걸 피해보려는 궁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5판에서의 팔라딘이 과거처럼 심한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일부 자극자 플레이어들은 팔라딘으로 허를 찌르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또한 “목적의식”이라는 점은 자극자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자극자 플레이어가 선택한 팔라딘은 동료들이 옆길로 새지 못하게 끊임없이 목적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 창조자
예전부터 이야기 창조자 플레이어들은 클레릭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팔라딘도 좋아했었습니다. 과거 팔라딘은 클레릭과 마찬가지로 신앙에서 힘을 얻었으며, 따라서 팔라딘을 원활하게 연기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캠페인 배경의 신앙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클레릭 소개에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캠페인 배경의 신앙에 대해 파악하면 결국 캠페인의 생활상이나 주제, 갈등 구조를 보다 깊게 알게 됩니다.
게다가 5판의 팔라딘은 “목적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야기 창조자들의 제1선택지가 됩니다. 높은 매력으로 일행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데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오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일행의 (혹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 이야기 창조자들이 너무나 좋아할 만한 요소들입니다. 지쳐 쓰러질 듯한 모험이 끝나고 나서 다른 동료들이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이야기 창조자의 팔라딘은 맹세를 되새기며 얼른 다음 모험을 준비하려 합니다. 물론, 이러한 성격이 이야기 창조자들의 또다른 매력 요소인 “곁가지 이야기”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이야기 창조자 플레이어들은 이 둘 사이를 잘 조절해 가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캠페인 전체의 방향을 잡는 것을 즐깁니다.
전술가
팔라딘에게는 전술가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대응력이 상당부분 갖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일행에 방어적인 역할과 보조 치료사가 동시에 필요할 경우, 전술가들은 주저없이 팔라딘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빼 놓고 보면, 딱히 팔라딘이 더 전술가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의 자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전술가들은 팔라딘보다는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클래스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퍼즐 해결사
퍼즐 해결사 플레이어들은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캐릭터와 해법을 실행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팔라딘은 양쪽 모두 그다지 특출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눈에 띄는 부분이 많지 않고, 주문이나 특수 능력 중 기발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퍼즐 해결사에게 “목적의식”이 더 매력적인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필요한 경우라면 팔라딘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선택의 자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클래스를 고를 것입니다.
하위 클래스 소개
팔라딘은 자신의 맹세에 따라 하위 클래스가 나누어집니다. SRD에서는 헌신의 맹세(Oath of Devotion)를 소개하였고, PHB에서는 여기에 더해 선조의 맹세(Oath of the Ancient)와 복수의 맹세(Oath of Vengeance)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헌신의 맹세
헌신의 맹세는 가장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팔라딘의 길입니다. 헌신의 맹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물리치며 약자들을 돕겠다는 맹세로 이루어집니다. 이 길을 선택한 팔라딘은 과거 AD&D~3.5판 시절의 팔라딘과 가장 유사한 감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헌신의 맹세는 여러모로 보아 가장 균형잡힌 맹세이기도 합니다. 헌신 팔라딘은 몇몇 치료 주문들을 얻고, 악마와 언데드를 퇴치할 수 있게 됩니다. 초반부터 헌신의 맹세가 주는 가장 유용한 능력은 신성 변환으로 무기를 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무기에서는 강력한 빛이 나며, 자신의 매력 수정치를 명중에 더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양손 무기 대가를 사용하여 강타를 때리면서도 거의 명중에 페널티를 받지 않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다만 많은 부분이 전통적인 팔라딘과 유사하다는 것은, 여전히 고결하고 정의롭지만 한편으로는 고지식하고 경직된 기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선조의 맹세
선조의 맹세는 엘프나 요정들 사이에서 하는 것으로,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빛과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맹세는 보다 자연적인 주문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며 요정이나 악마를 퇴치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맹세는 주변 동료들을 마법의 피해에서 지켜주며, 죽음의 부상을 당해도 한 번은 살아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선조의 맹세를 하는 경우, 과거 팔라딘들처럼 경직된 사고를 하기 보다는 아름다움과 음악을 즐기는 밝은 모습의 팔라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의식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는 “수호”에 있습니다.
복수의 맹세
복수의 맹세는 과거 AD&D부터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던 팔라딘의 한 측면인 “성스러운 복수자”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입니다. 복수의 맹세를 하는 팔라딘은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평생을 바쳐 처절하고 절대적인 응징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복수자들은 전통적인 팔라딘의 이미지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선을 추구한다기보다 악을 벌하는 것을 목적의식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맹세는 공격적인 주문들을 얻으며, 적대의 서약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이점을 받고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극에 도달한 복수의 팔라딘은 잠깐이지만 복수의 천사가 되어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자나사의 팔라딘 하위 클래스
저희가 앞으로 내놓을 예정인 XGE에서는 새로이 정복의 맹세(Oath of Conquest)와 구원의 맹세(Oath of Redemption)을 선보입니다.
정복의 맹세는 고전적인 팔라딘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입니다. 이 팔라딘들은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 법을 세우고 혼돈을 물리치려고 하며,. 그러기 위해서라면 구층지옥의 악마와 손을 잡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복의 맹세를 한 팔라딘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적들을 공포에 빠트립니다.
구원의 맹세는 헌신의 길보다 더 어렵고 험난하며 고결한 길입니다. 이들은 폭력을 피하려 들고, 어떠한 악인이라도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구원의 맹세를 한 팔라딘들이라도 구제의 여지가 없거나 존재 자체가 악인 크리쳐에게는 여전히 공격할 수 있지만,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회개와 갱생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결코 내버려 두지 못합니다. 이들은 보호와 치유에 연관된 주문과 능력을 얻으며,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평화의 기운을 퍼트립니다.
여러 세계 속의 팔라딘
클레릭과 마찬가지로, 팔라딘 역시 다양한 D&D 세계의 여러 신앙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포가튼 렐름즈
신들과 필멸자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고 가까운 포가튼 렐름즈에서는 과거부터 신들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팔라딘들이 있어왔습니다. 보호의 신인 헬름의 팔라딘들은 태양과 새벽의 신인 라샌더의 팔라딘이나 정의의 신인 티르의 팔라딘들과 다릅니다. 헬름의 팔라딘은 엄격하게 법을 지키려 하며,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여깁니다. 한편, 티르의 팔라딘은 더 큰 정의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샌더의 팔라딘은 일단 눈앞에 고통받는 자가 있을 경우 법과 정의를 생각하기에 앞서 구원할 방법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처럼, 페이룬의 팔라딘은 각자 신앙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의 여신인 슌을 따르는 팔라딘들의 경우 과거 시절에는 아름다움을 보고 찬미하지 않으면 교리에 어긋났기 때문에 바드는 저리가라할 정도로 미사여구를 읊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한편, 5판 이후 꼭 정의롭고 질서적인 신의 전사들만 팔라딘이 되는 것은 아니게 되면서 배인이나 로비아타의 팔라딘 등도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페이룬에서 가장 유명한 팔라딘이라면 다마라의 왕위에까지 올랐던 전설적인 가레스 드래곤배인(Gareth Dragonbane)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한낱 모험자에서 시작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악한 리치 젱기(Zhengyi)를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1300년대 워터딥의 공개 군주(Open Lord)였던 피어기어론(Piergeiron)도 유명한 팔라딘 중 한 사람입니다.
그레이호크
그레이호크에서도 모시는 신들에 따라 다양한 팔라딘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많은 팔라딘들은 기사도의 신이자 용맹의 신인 헤이로너스를 믿지만, 일부는 태양신인 펠러를 믿기도 하며, 질서와 빛의 신인 폴터스나 상식의 신 성 커스버트를 믿기도 합니다. 어떤 신을 믿는가에 따라 팔라딘들의 역할이 바뀐다는 점 역시 페이룬과 유사한 부분입니다.
과거 아에르디 대왕국의 전성기에는 헤이로너스의 팔라딘들이 수호 기사단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대왕국이 몰락하고 난 지금, 많은 팔라딘들은 퓨리온디에 자리를 잡고서 사악한 반신 이우즈와 싸우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퓨리온디의 전왕 벨버4세(Belvor IV) 역시 헤이로너스의 팔라딘이었습니다.
플라네스의 다른 팔라딘들은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지만, 대마법사 재기그의 동료로 이우즈의 봉인에 일조하였던 팔라딘 멀린드(Murylnd) 만큼은 약간 특이합니다. 본래 헤이로너스의 팔라딘이었던 멀린드는 재기그와 함께 모험하던 중, 기이한 거울을 통해 생전 처음보는 세계에 다녀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불꽃을 뿜어 멀리서 금속 덩이를 쏘아 적들을 쓰러 트리는 무기를 얻게 되며, 이후 그것을 플라네스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의 교단에서는 이 무기 “총”을 성물로 취급하며, 가장 뛰어난 “백색의 팔라딘(멀린드를 따르는 팔라딘들의 별명)”에게만 지급해 줍니다.
드래곤랜스
Est Sularus Oth Mithas.
“내 명예는 나의 생명”
앤살론 대륙은 과거 신들이 잠시 떠났다 돌아온 곳이니 만큼, 팔라딘들의 모습도 다른 세계와는 남다릅니다. 오히려 앤살론에서 팔라딘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것은 솔람니아(Solamnia)의 고결한 기사들일 것입니다. 솔람니아 기사들은 기사도의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악을 물리치는데 평생을 바칩니다. 그러나 이스타르 신성 제국과 이어지는 대격변 시기, 솔람니아는 누명을 쓰고 몰락에 가까운 처지에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누명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 신들은 대격변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고결하고 용감한 모습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솔람니아의 한 기사에게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의심과 욕망, 증오 때문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바로 최초의 데스 나이트인 소스 경(Lord Soth)입니다.
소스 경이라는 오점이 있긴 하지만, 솔람니아의 기사들은 그 이후 재건하여 앤살론의 평화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솔람니아 기사단은 직위에 따라 왕관의 기사에서 시작해, 검의 기사를 거쳐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장미의 기사로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소스 경의 별명이 흑장미의 기사이기도 합니다.) 랜스의 영웅들 중, 성벽에서 블루 드래곤과 맞서 최후를 맞이한 영웅 스텀 브라이트블레이드(Sturm Brightblade) 역시 솔람니아 기사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버론
신앙의 구조가 여타 D&D 세계들과는 다르게 이루어져 있는 에버론에서는 전통적인 모습대로 신앙에 따르는 팔라딘도 있지만 자신의 신념에서 힘을 얻는 팔라딘들도 존재합니다. 그중 가장 인상깊은 것은 “국가에 대한 신념”에서 힘을 얻는 카르나스의 팔라딘들입니다. 이들은 최종전쟁(the Last War) 당시 카르나스의 지휘관으로서 막강한 활약을 했습니다. 한편, 은빛 불꽃 교회의 팔라딘들은 이단 심문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이들은 무저갱에서 숨어들어온 악마들을 처치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체인즐링이나 시프터들을 악마의 사도로 몰아 정화(Purge)라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3.5판 말미부터 이루어진 D&D의 서사적 다양성 확보는 에버론의 영향이 큽니다. 에버론이 인기를 얻고 현대적인 생각의 다양성이 게임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팔라딘을 포함한 여러 클래스들의 성향 제한이 사라졌고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팔라딘을 위한 도움말
팔라딘은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어느 것이든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서도 전투 조우에서 남못지 않게 활약하고 싶은 플레이어가 있다면 팔라딘은 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역할 연기 부분에서도, “목적의식”이 확실한 캐릭터는 연기하기 좋습니다. 팔라딘은 여러모로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이 더 연기하기 편하고, 게임에서도 즐겁습니다.
팔라딘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주문 슬롯과 신성 변환입니다. 팔라딘은 한정된 자원을 공격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만약을 위해 온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치명타가 터졌을 때 주문 슬롯을 소비해 한번에 엄청난 피해를 가할 수 있지만, 이 슬롯은 이후 쓰러진 동료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팔라딘은 근력과 매력을 올려야 하고, 근접 전투에서 보다 오래 견디기 위해(그리고 내성을 위해) 건강도 신경써야 하므로 능력치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재주를 하나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변형) 인간이 팔라딘에 가장 좋은 선택이 되곤 합니다. 만약 재주를 사용하지 못하는 캠페인이라면 매력이 올라가는 하프 엘프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주를 사용하는 캠페인에서, 팔라딘은 파이터와 거의 유사한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근접 방어자로서의 역할을 선택하고 싶다면 파수꾼(Sentinel) 재주를 골라 적의 이동을 확실하게 봉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대형 무기 대가 재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팔라딘은 파이터에 비해 명중 굴림에 보너스나 이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더 많기에, 오히려 대형 무기 대가의 명중 페널티를 웃으며 받을 수 있는 클래스이기도 합니다. 다만 팔라딘은 위에서 말한 대로 능력치 배분이 까다롭고 파이터만큼 많은 재주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적 보다는 한 가지에 확실하게 집중하여 투자하는 편이 좋습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로 확실히 가닥을 잡은 팔라딘은 한두가지 재주만 고르면서 나머지 능력치를 원하는 만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맺음말
드디어 길었던 클래스 소개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개에 함께 해 준 저희 팀원들 모두, 저희들의 고민과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글이 D&D를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 그리고 오래간만에 다시 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클래스나 게임적인 요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저희에게 문의해 주십시오. 명확한 정답만을 드릴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저희도 같이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