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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의 카드 2 - 거울 속에서의 죽음

안녕하세요! 번역팀에서 들려드리는 이야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저번 이야기는 재미있으셨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전 이번에 어떤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 봤거든요. 그런데 마침 번역팀 이야기에서 소개된 문제도 있고 하니 거기 얽힌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여러분, 여러분은 모험하면서 가장 황당하게 죽어본게 언제인가요?

D&D를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죽게 되잖아요. 화염구FIreball 한 방에 뻥 하고 터지거나, 분해Disintegrate를 맞아서 고운 가루가 되던가, “보팔 검(Vorpal Sword)”에 목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죠. 어떤 죽음이든 한두번씩든 다들 겪어봤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저희 파티에서 벌어진 죽음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 황당한 죽음 중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하나의 가방에서 출발합니다.


‘소지의 가방(Bag of Holding)’을 아시나요?


정말 좋은 물건이죠.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르면 없는 경우가 더 드물고요.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면 음, 그냥 보이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이 들어가는 가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새 그런거 많지 않나요? 미래에서 온 파란색 고양이 로봇의 사차원 주머니. 이세계를 여행하는 고등학생들의 필수품, “인벤토리!”


하지만 D&D 세계에서 이 물건은 참 편리한 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진짜 위험한 부분도 있죠. 바로 “이차원 공간이 충돌할 때의 문제” 라는 겁니다. 영문 DMG 원본에는 이런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Placing a bag of holding inside an extradimensional space created by a handy haversack, portable hole, or similar item instantly destroys both items and opens a gate to the Astral Plane. The gate originates where the one item was placed inside the other. Any creature within 10 feet of the gate is sucked through it to a random location on the Astral Plane. The gate then closes. The gate is one-way only and can't be reopened.


저희는 이걸 이렇게 번역했죠.


소지의 가방을 히워드의 편리한 배낭이나 휴대용 구멍 같은 이차원 공간에 집어넣으면, 두 물건 모두 파괴되며 동시에 아스트랄계로 가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이 문은 두 물건이 겹쳐 있던 장소에 생겨나며, 이 문으로부터 10ft 안에 있던 모든 존재는 아스트랄 계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문은 사라집니다. 이 문은 일방통행이며, 고의로 다시 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깐 이 이차원 공간을 다른 이차원 공간 안에 넣으면 갑자기 아스트랄계로 열리는 균열이 생기면서 주변에 있는게 싹 빨려 들어가고는 쓱 사라져 버린다는 거죠. 있었는데, 없어진거라고나 할까요. 마치 우리들의 통장 잔고처럼요.


물론, 저희는 10레벨이 넘는 익숙한 모험자들이잖아요. 그러니 이런 위험은 알아서 잘 피했어요. 이차원 공간 폭발 같은거야 뭐, 5레벨 때나 걸리지 않나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깐 저희가 어떤 고성의 저주를 풀기 위해 여행을 할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저희는 강력한 뱀파이어를 맞이해 싸우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싸움이었죠. 무대도 저희에게 유리한 곳으로 정했고요. 저희 일행 모두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어떤 수도원 앞에 유인해 온 뱀파이어와 처절한 격투를 벌렸어요.


물론, 저희가 이겼죠. 저희는 고이고 고인…. 아니, 숙련된 모험자니까요! 저희는 온몸에 성수를 뿌리고 매혹에 철저하게 대비를 한 다음 공격을 했어요. 물론 그래도 결코 쉽지는 않았죠. 어쨌든 전투는 저희의 승리로 돌아갔고, 뱀파이어는 안개로 변해서 자신의 본거지인 고성으로 달아났어요.


저희 쪽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죠. 하지만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저희 일행 중 하나는 그 전투에서 살짝 정신줄을 놔서, 나중에는 자기가 저주를 받아 변이한 레드 드래곤이라고 믿기도 했죠. 레드 드래곤 레인저라. 음률이 제법 맞네요. 아, 물론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hp가 0이 된 뱀파이어는 관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이 되면 완전히 회복이 되서 일어나요. 그러니까 이번이 저희 기회였죠. 무슨 기회냐고요? 당연히 성을 털어먹을 기회죠! 저희는 얼른 전속력으로 고성으로 향했어요.


사실, 마스터는 이전부터 뱀파이어의 고성에 값비싼 물건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는 암시를 잔뜩 보내곤 했어요. 하지만 털기에 적당한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죠. 몰래 한두번 들어와 본 적도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정신지배를 당해서 탑 위에서 단체로 뛰어내려본 적도 있어요. 아, 그러고보니 아마 그때부터 자기가 레드 드래곤이라고 믿었나보네요. 추락하는 걸 보니 날개는 없는데 말이죠.


클레릭도 드루이드도 없는 파티답게 저희는 신중하게 탑 곳곳을 뒤졌어요. 여기서 아차 하면 귀중한 기회를 날려먹게 되니까요. 함정이란 함정은 다 해제했고, 여기저기 있는 적들도 싸우기보다는 피하면서 진행했죠. 그 덕에 우리는 상당히 값비싼 것들을 많이 챙길 수 있었어요. 돈보다는 물건! 그중에서도 장서고를 발견한 것이 최고였죠. 무려 “책(Tome)”를 한 권 발견했거든요.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책”를 발견했다는 마스터의 말을 듣자 우리 일행들의 눈빛이 모두 변했어요. 일단 발견한 것이 “매력” 책이었기 때문에, 특히 팔라딘, 바드, 소서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죠. 어쨌든 찾아낸 것들은 나중에 분배하기로 하고, 우리 일행의 짐꾼인 바바리안이 모두 집어넣기로 했어요.


저희가 장서고를 뒤진 다음, 연금술 연구실에서 물약도 몇개 챙기고 나서 군주의 침실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침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여자의 초상화 벽걸이를 살펴보던 레인저가 무언가 발견한 것 같다고 신호를 보냈죠. 여기서 바로 벽걸이를 들춰보는 건 초보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저희는 익숙한 모험자답게 진형을 갖추고, 모두 뒤로 30ft쯤 멀리 빠진 다음 의논을 시작했죠. 함정일 수도 있지만 딱히 해제할 방법은 보이지 않으니, 가위바위보에서 진 한 명이 가서 벽걸이를 들추기로 했어요. 보물은 다같이. 위험은 혼자서. 어디서나 통하는 모험자의 법칙입니다.


다행히 저는 이겼죠.

남자답게 주먹을 내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해 놓고 가위를 냈다가 혼자 진 건 바로 바바리안이었어요. 삼세판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투덜대긴 했지만 어쨌든 혼자서 벽걸이 앞으로 가서 들춰 보겠다고 선언을 했지요. 마스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하더군요.


“DC 15 매력 내성 굴리세요.”


내 이럴 줄 알았지.

바바리안이 매력이 높을리가 있나요. 주사위는 12가 나왔는데 어쨌든 실패했어요. 이얍! 고양감! 5판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게임 중에 연기를 잘 하거나 재미있는 발상을 하면 “고양감(Inspiration)”이라는 자원을 얻어요. 이 자원을 쓰면 실패한 d20 주사위를 한 번 다시 굴릴 수 있죠. 하지만 다시 굴린 주사위도 3이 나오고 말았어요. 안될 때는 안되는 법이거든요. 여하튼 그러자 마스터가 묘사를 해주었습니다.


“벽걸이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그 표면에 당신 모습이 비치자마자 거울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거울 안에서 무언가 손 같은 것들이 당신을 잡아서 단번에 거울 속으로 집어넣었어요.”


바바리안 플레이어는 턱이 땅에 떨어졌고 저희는 한참을 웃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웃을 때가 아니었죠. 우리 물건들은? “책”은? 물약은? 바바리안 캐릭터는 그렇다 치고 그 캐릭터가 들고 있는 것들이 문제였거든요. 아니 캐릭터도 문제이긴 하지만요.


“당연히 같이 빨려들어갔지.”


이런 망했네요. “책”은 내꺼였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전에 주웠던 물약이랑 방금전까지 성을 뒤지면서 나왔던 물건들이 죄다 바바리안 손에 있었는데, 뱀파이어 영주랑 2차전을 하려고 해도 그 것들이 필요했어요. 어쨌든 바바리안 친구를 꺼내야만 했죠.


저희 위저드가 지능(비전학) 판정을 해서 성공하니까 마스터는 저 거울이 뭐 하는 물건인가 알려줬죠. 바로 “생명 포획의 거울(Mirror of Life Trapping)”이라는 물건이었어요. 그 판타지 영화나 소설 보면 가끔 나오는 거울 감옥 있잖아요? 네. 바로 그런거라고 상상하면 됩니다.

DMG에 소개된 이 거울은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Any creature other than you that sees its reflection in the activated mirror while within 30 feet of it must succeed on a DC 15 Charisma saving throw or be trapped, along with anything it is wearing or carrying, in one of the mirror's twelve extradimensional cells. This saving throw is made with advantage if the creature knows the mirror's nature, and constructs succeed on the saving throw automatically.


저희는 이렇게 번역했고요.


당신을 제외하고 30ft 내에서 발동중인 거울의 표면을 바라본 크리쳐는 DC 15의 매력 내성 굴림을 굴려야 하며, 실패할 시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장비하거나 들고 있는 모든 물건과 함께 거울 속 12개의 이차원 감방 중 한 곳에 감금됩니다. 이 거울의 본성에 대해 미리 알고 있다면 내성 굴림에 이점을 받을 수 있으며, 구조물의 경우 내성에 자동으로 성공합니다.


저희는 짐꾼, 아니 바바리안을 꺼낼 방법에 대해 한참 같이 고민을 했어요. 가장 좋은 건 거울을 깨는 것이긴 한데 거울을 깨면 그 안에 있는게 다 튀어나온다더라구요. 대체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거울을 깼다가 이상한 놈이라도 튀어나오면? 우리 마스터 성격을 알고 있는 저희는 그런 도박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도 거울을 깨자는 이야기를 할 때 마스터가 스크린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저는 딱 한번 마스터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누군가 밥을 사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슐랭 가이드를 뒤적거리며 짓던 바로 그 표정었어요.


거울을 깨지 않고 바바리안(과 “책”)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저희가 한참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바바리안 플레이어는 혼자 룰북을 뒤적거리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어요.


“어? 나 죽었네?”


엥? 갑자기 왜? 레인저도 아닌데? 거울 속에 뭐가 있나?


바바리안 플레이어는 룰북을 들고 쓰여 있는 문구의 한 부분을 가리켰어요. “12개의 이차원 감방” “이차원 감방”.... “이차원(Extradimension)”.... 어? 잠깐?


네 그렇죠. 우리 바바리안은 그때 소지의 가방을 들고 있었거든요. 들어올 때부터 고성의 기둥뿌리를 뽑아먹을 생각이 가득했으니까요. 당황한 것은 저희 만이 아니었죠.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벌어진 사건은 마스터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니 잘못 걸리면 거울에 빨려들어갈 줄은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서 뻥 터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마스터는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곧 결심한 듯 묘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거울에서 (바바리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허리춤에 매단 가방이 파란색 빛을 내니 시작해요. 그 빛은 점점 커져가면서 거울을 가득 채웁니다. (바바리안)은 심상찮은 느낌에 가방을 내려다봤는데 바로 그 순간 가방이 뻥 하고 터지더니 거기서 새파란 빛의 균열이 열립니다. 그리고 30ft 뒤에 있는 여러분들이 차마 손을 뻗을 새도 없이 거울 속에 비쳐보이는 (바바리안)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 귀에는 바바리안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아요. 으으으아아아아아악. 자. 끝. 고생했어요.”


“아이고 내 책…”


“누구 맘대로 자기 책이래.”


“나 캐릭터 다시 만들어야겠는데.”


“이번에는 힐러로 만들어라 좀.”


저희는 허탈함에 빠졌어요.

이 친구는 캐릭터와 일치할 줄을 몰라요. 바바리안이 왜 똑똑한 척을 해서 명을 재촉한답니까. 그냥 모르는 채로 넘어갔으면 됐을 것을....

“책”, 아니 바바리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지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물약이나 다른 물건이 없으면 부활한 뱀파이어 영주랑 싸울 때 승산이 별로 없을 것이 뻔하거든요. 그러니 이번에는 힐러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오갔어요. 하지만 바바리안 플레이어는 별로 힐러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죠.

뭐 지금까지 잘 버텼으니까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레인저도 파티의 좋은 방패(육체)가 될 수 있고요.


그래도 어쨌든 지금 꼴로는 뱀파이어 영주가 부활할 때 고성에 있어봤자 별로 좋은 꼴은 볼 수 없을 것이 당연했으니 얼른 피해야 했어요. 한시가 급했죠.


저희는 일단 마을로 돌아가기로 하고,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정보를 모았어요. 바바리안 플레이어는 파이터를 만들까 워락을 만들까 고민을 하고 있었고요. 그때 마스터가 넌지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근처에 강력한 마법의 힘이 봉인된 신전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곳에 가면 다른 마법 물건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아이고. 이번에는 또 어떻게 죽이실려고. 하지만 의심만 하는 것도 별로 생산적인 행동은 아니죠. 저희는 반신반의하면서 마스터가 파놓은 길을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손해볼 것은 없으니까요!


덧붙임: “이차원 공간 충돌”은 외국 커뮤니티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었어요. 그중 가장 인상깊은게 “완전한 파괴의 화살촉(the Arrowhead of Total Destruction)”이라는 물건이에요. 사진을 첨부할테니 한번 보세요!



외국 커뮤니티에서는 이차원 공간 충돌이 물건에 의한 이차원 공간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많이 벌어지곤 했어요. “물건에 의한 것에서만 발생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쪽은 로프 속임수Rope Trick 등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이차원 공간은 소지의 가방 등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논쟁도, “거울 속에서의 죽음”은 어쩔 수가 없어요. 생명 포획의 거울은 분명히 마법 물건이거든요. 따라서 충돌은 100%. 그것만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오늘의 교훈: 만약 당신의 캐릭터가 소지의 가방을 들고 있다면, 절대 거울을 보지 마세요. 절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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