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D&D5판 한국어판 번역팀의 담당자 Shane Kim입니다.
먼저, 대망의 한국어판 발매에 보여주시는 열화와 같은 성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기대에 보답해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어판 발매 이후에도 계속 출판될 관련 룰북이나 모험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한 가지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저희는 현재 2년차에 발매될 한국어판의 첫 번째 모험으로 “스트라드의 저주(Curse of Strahd)”를 정하고, 이를 번역 중에 있습니다. 또한 캐릭터 선택지를 늘려 줄 수 있는 다른 추가 룰북들 역시 번역 중입니다. 이 번역들을 통해 한국의 플레이어분들 역시, 영미권이나 다른 언어권의 플레이어들에 비해 손색없는 게임 경험을 누리실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홈페이지와 칼럼 공개 후 지난 며칠간, 여러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저희에게는 하나같이 소중한 의견들입니다. 저희 번역팀은 크나큰 관심에 고무된 한편,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여러 의견과 문의들 중 특히 칼럼에서 먼저 공개된 용어들에 대해 들어온 문의들을 검토한 결과, 한국어판 판매를 담당하는 DKSA에서는 저희에게 번역 원칙을 공개할 필요가 있겠다는 제의를 해 왔습니다. 저희 역시 여기에 동감합니다. 원칙이 공개되면, 여러분의 의문 중 적어도 일부는 해소해 드릴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희는 이번 D&D 5판 한국어판의 번역에 임할 때 저희가 고려한 원칙과, 저희의 자세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D&D 브랜드 현지화 원칙
먼저, 저희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 이하 WotC)에서 제시한 브랜드 현지화 원칙의 제한 하에, 저희 나름의 원칙을 세워 번역 용어를 정하였습니다. 아래는 WotC가 제시한 브랜드 현지화 원칙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1. Trade Mark
Trade Mark 로고는 절대 번역되지 않습니다. 로고를 제외한 Trade Mark에 준하는 명사를 표기하는 경우,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이하 음역)을 원칙으로 합니다. D&D, Forgotten Realms, Wizards of the Coast 등은 이 원칙을 따릅니다.
2. 상품명
상품명, 즉 소설이나 룰북 각각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뜻을 번역하는 것(이하 해석)을 원칙으로 합니다. 다만, 이 룰북에서 쓰이는 일반 명사 및 고유 명사 등에 대해서는 각각의 원칙을 따릅니다.
3. 캐릭터 이름 등의 고유명사
캐릭터 이름은 음역합니다. 단, 직위와 지위, 별명 등은 해석을 원칙으로 합니다.
4. 장소명
고유명사에 가까운 장소의 이름은 음역합니다. 단, 이름 내에 "~의 다리"라거나 "~산" 등의 일반적인 명사가 있는 경우, 이 일반적인 명사는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또한 해당 언어권에서 기존에 출판/제작되었던 매체에 등장하는 장소명의 경우, 해당 장소명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5. 조직명
조직의 이름은 가능한 해석합니다. 다만 마찬가지로, 고유명사가 조직명에 포함되는 경우 그 고유명사에 대해서는 음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6. 종족, 클래스, 괴물, 크리쳐 등의 게임 용어
게임 용어들은 해석하여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단, 해당 언어에 적합한 대응어가 없을 경우 음역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지화의 재량이 많이 주어졌습니다.
D&D 5판 번역팀의 원칙
D&D 5판 한글화에 있어서, 번역팀은 오랜 기간 논의를 거치며 아래와 같은 원칙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아래는 (고유 명사의 발음 등을 제외한) 게임 용어나 괴물 등의 이름을 정할 때의 원칙들입니다.
1. 사용자의 편의가 최우선
플레이어가 없으면, 게임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어판 번역팀에서는, 번역 용어를 정할 때 플레이어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단어, 어색하게 느끼지 않을 단어를 우선적으로 고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뜻이 완전히 일치하되 대단히 생소한 단어보다는, 기존에 널리 쓰이던 단어를 우선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널리 쓰이고 있어서 변경할 경우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할만한 단어의 경우,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계속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어판 번역팀은 기존 한국 팬덤의 용어 총의(=Consensus)를 흡수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 정확한 의미 전달을 우선
D&D는 "카드 게임적인 정확성"이 대단히 중요한 게임입니다. 전술적인 상황에서는 능력을 사용할 때 상대를 볼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같은 문구 하나의 차이가 캐릭터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번역팀에서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 문장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소 어색하게 읽히더라도,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문구 내의 요소들은 반드시 다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같은 범주 내에서의 통일성
저희의 이번 번역 과정에서, 특히 통일성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번역에서 통일성의 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통일성이 없는 번역은 난잡해지기 쉽고, 앞으로의 진행을 예상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게임 룰북에 있어서는 사용자 편의성이 통일성만큼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 번역팀의 의견이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몇몇 경우에 한해, 통일성보다 다른 원칙들을 우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뜻을 해석하려 하면 지나친 의역을 피할 수 없거나 한글에 맞는 표현이 아예 없는 경우, 혹은 의역을 하게 되면 의미의 전달을 해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 저희는 그나마 같은 범주 내에서는 통일성을 가능한 유지하여 같은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대안으로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음역과 해석 등으로 번역의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 브랜드 현지화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범주 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의미 전달이나 사용자 편의성을 위해 그런 방식을 취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번역 역시 마찬가지 한계로 인해, 유사한 형태로 같은 범주 내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4. 기존의 전통
한국에서는 20여년 전, 던전즈&드래곤즈 클래식이 발매된 바 있습니다. 저희는 그때의 전통을 가능한 한 따르고자 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에서 D&D 5판이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 배경에는, 과거 D&D를 즐겨왔던 세대와 새로이 5판으로 게임을 시작하는 세대가 같은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점 역시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D&D 클래식의 출판은 RPG 인구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효시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희 번역팀은 D&D 5판의 한국 출시가, 다시금 D&D 플레이어들을 늘어나게 해 주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따라서, 저희는 용어에 있어서 위의 원칙들과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면, 기존 D&D 클래식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에 보다 무게를 두었습니다.
5. 발음 문제
WotC에서는 2008년부터, 출판물에 고유명사 발음에 대한 명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책의 변화로, 각 지방이나 지역마다 발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어 번역 역시 동일한 원칙이 준용됩니다. 발음 문제에 있어서 저희는 여러 참고 자료를 조사하고 있으나, 실제의 발음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고유명사에 관해서는 최초 1회에 영어를 병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어 번역은 사용자 편의성이나 기존의 전통과 배치될 경우, 로마자 한글 표기를 완벽하게 따르지 않습니다. 한글 표기로는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여러 플레이어 분들이 기존에 본인들에게 익숙한 다른 발음을 계속 사용하시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저희는 한국 팬덤의 의견들이 충분히 집적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피드백은 이후 한국 D&D 문화를 더욱 성숙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번역팀의 자세
저희 D&D5판 한글판 번역팀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항상 의견이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에 임하는 자세 만큼은 항상 일치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래는 번역에 관련된 저희의 기본적 자세입니다.
먼저, 번역자가 플레이어들이나 팬덤을 가르치는 입장이어서는 안됩니다. 번역자는 안내자이자 소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용어 선정등에 있어서 번역자의 의견과 팬덤의 총의가 충돌하는 경우, 원작자의 의도 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팬덤의 총의를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번역자를 포함하여 사람이란 항상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실수를 고집하면 그때부터는 잘못이 됩니다. 저희 역시 많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가능한 한 잘못은 줄여야 합니다. 이것이 저희의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둘째로, 저희 번역팀은 팬덤 내부의 토의나 의견 대립에 있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즉, 저희는 용어 등에 있어서 팬덤의 의견이 상충할 경우, 어느 쪽이 맞다는 판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고유명사의 처리와 발음 등에 관련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저희가 섣불리 한 쪽의 의견을 채택하게 되면 팬덤에서 저희 판단을 WotC의 공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는 책을 내기 전 충분히 팬덤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것이며, 저희의 원칙에 비추어보아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할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와 관련해, 저희 번역팀은 D&D5판 한국어판을 담당하는 DKSA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최대한 플레이어 여러분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지만, 각 일원들이 SNS나 커뮤니티 등에서 따로 개인적인 채널을 유지하며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개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함께 모여 만들어 낸 번역의 결과물로, 팬덤에 대한 태도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채널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팀워크는 물론 공정성과 전문성을 해치며, 개인의 잘못된 발언이 팀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모든 번역자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만 가능한 모든 의견을 수렴할 것입니다.
저희 역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친구들과 D&D나 다른 RPG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이며 일부는 마스터들이기도 합니다. 저희들은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높은 기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역시 있습니다. 저희는 한국에서 D&D가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저희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희는 한국의 팬덤과 대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RPG를 즐기는 플레이어가 없다면, RPG도 없습니다.
또한, 이번 D&D5판의 출시를 계기로 한국의 D&D 팬덤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번역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의견들에 대한 관용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의견의 교환 자체가 팬덤을 더 활발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활발하고 관용어린 의견 교환 끝에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용어들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면, 저희는 그 총의를 가능한 한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플레이어 여러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희 번역팀이 여러분이 떠날 그 모험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D&D 5판 한국어판 출판을 기다리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는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없다면, 한글판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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